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정보가 기억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정보처리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를 보고 듣는다. 하지만 그 모든 정보가 장기간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보는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어떤 정보는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며, 일부 정보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기억을 하나의 정보처리 체계로 바라보아 왔다.
대표적인 설명 가운데 하나가 앳킨슨과 쉬프린(Atkinson & Shiffrin)의 다중저장고 모형이다. 이 모형에서는 기억을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으로 구분하고, 정보가 부호화되고 저장되며 필요할 때 인출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부호화(encoding)는 외부에서 들어온 자극 정보를 기억체계에서 다룰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여 기억 표상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기억하려면 단순히 눈앞에 정보를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고 조직되는지가 중요하다.
단어의 모양이나 철자처럼 시각적인 형태를 중심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단어가 어떻게 발음되는지와 같은 소리의 특성을 중심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단어나 정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처리하는 방식이다.
대상을 실제로 눈앞에 두지 않아도 마음속에 이미지나 장면을 떠올려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단어를 기억한다고 생각해 보자. 글자의 모양을 떠올릴 수도 있고, 단어의 발음을 머릿속으로 반복할 수도 있다. 또는 빨간 사과의 모습이나 ‘먹는 과일’이라는 의미를 떠올릴 수도 있다. 같은 정보라도 어떤 방식으로 부호화하느냐에 따라 기억 과정이 달라질 수 있다.
감각기억(sensory memory)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원래의 감각적 형태에 가까운 상태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되는 저장체계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들은 직후 그 정보가 잠깐 남아 있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시각 정보의 감각기억은 대표적으로 상징기억(iconic memory), 청각 정보의 감각기억은 잔향기억(echoic memory)이라고 한다.
시각적 정보는 대체로 수백 밀리초 정도로 매우 짧게 유지되고, 청각적 정보는 이보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오래 유지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감각기억의 중요한 특징은 정보가 매우 빠르게 사라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감각적으로 들어온 모든 정보가 자동으로 다음 기억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중 어떤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느냐가 이후의 정보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각정보를 즉시 모두 사라지게 하는 대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유지해 주면, 우리의 인지체계가 그중 중요한 정보를 선택하여 추가로 처리할 수 있다. 즉, 감각기억은 다음 단계의 정보처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잠시 정보를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한다.
단기기억(short-term memory)은 현재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보를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유지하는 기억체계다. 감각기억보다 오래 정보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그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시연이나 반복이 없다면 수십 초 정도 유지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대표적인 교과서적 설명은 약 20~30초다.
전통적으로 약 7±2개의 정보 단위라는 설명이 유명하지만, 실제 기억 능력은 정보의 종류와 조직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단기기억에 들어온 정보를 계속 유지하려면 시연(rehearsal)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를 잠시 기억해야 할 때 머릿속으로 숫자를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반복을 통해 정보가 더 오래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기기억의 용량을 설명하면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청킹(chunking)이다. 청킹은 여러 개의 개별 정보를 의미 있거나 익숙한 하나의 단위로 묶어 처리하는 방법이다.
숫자를 하나씩 기억하는 대신 익숙한 숫자 묶음으로 조직하면 여러 정보를 하나의 단위처럼 처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긴 전화번호나 날짜를 일정한 단위로 나누어 기억하는 것도 일상적인 청킹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다만 청킹은 단순히 기억 용량을 물리적으로 늘리는 마법 같은 방법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보를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의미 있는 단위와 연결하여 더 효율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Miller(1956)의 연구가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러한 정보의 조직과 재부호화 과정이었다.
기억은 정보를 그대로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는 단순한 창고와는 다르다. 외부의 자극은 먼저 감각적으로 매우 짧게 유지되고, 주의를 기울인 정보는 이후의 처리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정보는 다양한 방식으로 부호화되고, 단기적으로 유지되며, 반복이나 조직화를 통해 더 효율적으로 처리될 수 있다.
특히 청킹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일상에서 긴 숫자나 단어를 기억할 때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기억의 효율은 단순히 ‘얼마나 많이 저장할 수 있는가’뿐 아니라, 정보를 어떻게 부호화하고 조직하느냐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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