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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공부

”독도“ 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할 사실들! 3-1

by Yulmuule 2024.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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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료에 나타난 독도

여기서 사료란!

사료 : 역사 연구에 필요한 문헌이나 유물. 문 서, 기록, 건축, 조각 따위를 이른다.

🏝️삼국 시대의 울릉도와 독도
우리나라에서 울릉도• 독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1145년)에 나온다. 여기에는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신라에 복속시킨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이 우산국에는 울릉도뿐만 아니라 우산도, 즉 오늘날의 독도 도 포함된다. 이는 "동국문헌비고" (1770년)에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 땅이다."라고 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512년(지증왕 13년) 여름 6월에 우산국이 항복하고 매년 토산물을 공물로 바쳤다. 우산국은 명주의 정동 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라고도 한다. 땅은 사방 백 리이다. 이곳 사람들이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복종하지 않자, 이찬 이사부가 하슬라주(강릉지역)의 군주가 되어 말하기를, "우산국 사람들은 어리석고 성질이 사나워 위엄으로 복종시키기는 어려우니 꾀를 써서 복종시키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다. 이에 나무로 된 가짜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선에 나누어 싣고는 우산국 해안에 이르러 속여 말하기를 "너희들이 만일 복종하지 않는다면 이 맹수들을 풀어놓아 밟혀 죽게 하겠다."라고 하니, 사람들이 두려워서 바로 항복했다. -삼국사기-

🏝️고려 시대의 울릉도와 독도
우산국은 고려가 세워진 이후에도 고려의 지배를 받았다. 우산국은 930년 (태조 13년) 고려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고, 고려는 이들에게 관직을 주어 복속 상태를 유지했다.
1018년(현종 9년)에 우산국이 여진족의 침입을 받아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현종이 농기구와 종자 등을 우산국에 하사했다. 1032년(덕종 1 년)에는 울릉도(울릉도) 성주가 고려에 아들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이후 1157년(의종 11년)에 의종은 강릉 지역의 관리 김유립을 파견하여 울릉도에 사람이 살 수 있는지를 알아보게 했다. 김유립은 울릉도의 면적과 촌락터, 유적지, 산물 등을 조사하고 돌아와, 왕에게 울릉도에는 바위가 많아 사람을 이주시켜 살게 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그 후에도 고려 조정은 주 민을 울릉도로 보냈으나 도중에 풍랑으로 인해 익사하는 사람이 많아 이주를 중단시켰다. 당시에는 왜인들의 침입이 그치지 않아 중앙 정부는 1246년 (고종 33년)부터 울릉도에 안무사를 파견하여 섬을 관리했다.
고려 시대에는 울릉도가 우릉(도)•무릉(도)으로도 불렸고, 모두 울릉도를 가리킨다. 독도는 우산(도)으로 불렸다.
"고려사"(1451년)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은 본래 두 섬인데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라고 했다.
-고려사-
안무사
백성의 어려움과 지방관의 잘못을 살 피기 위해 중앙 정부에서 임시로 파견한 관리이다.

🏝️조선 시대의 울릉도와 독도
울릉도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므로 조선 시대에 들 어와서도 울릉도와 관련된 보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로서는 주민들이 울릉도에 들어가 사는 일을 방관할 수 없었다. 백성들이 세금을 피해 울릉도로 도망가는 경우가 있었고, 울릉도는 쉽게 왜구의 약탈 대상이 되었 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울릉도에 대해 '쇄환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는 정부가 울릉도와 주변 섬을 관리하기 위한 정책일 뿐 섬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쇄환 정책
섬의 주민을 육지로 옮겨 살게 하는 정책이다.

한편 사람들은 정부의 쇄환 정책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울릉도로 들어갔으므로 섬이 빈 적은 거의 없었다. 당시 섬을 조사하기 위해 정부에서 파 격한 관리의 직은 '무릉 등 처 안무사'혹은 '우산무릉 등 처 안무사‘였다. 관직명에 '우산'과 무릉', 두 섬 이름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울릉도뿐만 아니라 우산도에 대해서도 조사하도록 했음을 알 수 있다.

•두 섬의 거리 관계를 밝힌 “세종실록”'지리지
조선 초기에 정부는 나라의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전국적인 지리지 편찬 작업에 착수했다. "신찬팔도지리지" (1432년)를 보완하여 "세종실록” '지리지' (1454년)로 완성시켰다. 여기에 울릉도와 우산도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우산 무릉도 섬이 울진현의 정동 쪽 바다에 있다.
두 섬은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 국이라 칭했으며, 울릉도라고도 했다.
-세종실록 지리지-


하루에 조금씩 독도에 대해 알아가 볼게요!
부족하지만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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